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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창립 선언문

 -화가 건축과 조각가가  힘을 합쳐 조형 예술을 통합하고 총체적인 예술로 나아간다. 

- 예술은 교육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공예는 교육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모든 예술적 창조활동에 필수적인 기초가 될 것이다. 

* 바우하우스는 종합 조형학교로서 창립되었다. 


바우하우스 조형학교의 창립자 발터 그로피우스는 독일 베를린 출신의 유망한 건축가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기술이 수작업을 압도하면서 수공예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기 시작했던 시절 
그로피우스는 공예와 기술이 협력해서 더 향상된 디자인을 생산해야된다고 생각했고 
1919년에 공립공예학교와 공립조형예술학교를 통합하여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의 종합 조형학교를 창립하였다.

이후 바우하우스의 통합적 실용적 디자인 정신은 
독일과 유럽은 물론 나치의 핍박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그로피우스(하버드대 교수 역임)에 의해 미국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 운영자 주 
- 바우하우스는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시스템의 광풍이 불던 시대에 소량 다품종 생산에 적합할 것 같은 교육을 위해 그야말로 수십년을 내다본 혜안으로 만들어진 학교였다. 바우하우스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하나의 중심 사조를 이끌었으며 디자인을 디자인이라 하지 않고 조형이라고 하면서도 산업디자인을 예술과 조합될 수 있도록 한 위대한 흐름이었다. 나치는 바우하우스를 바이마르의 잔재이며 퇴폐적이라하여 탄압하고 폐교시켰다. 그로 인해 독일의 디자인은 나치의 그것에서 발전이 더뎌졌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로피우스에 의해 미국의 건축과 산업디자인이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독일의 디자인도 수준급이지만 더 발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바로 나치의 탄압때문이었다.